청와대가 아니라 ‘순실대’. 문체부가 아니라 ‘차은택부(部)’?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던 청와대와 내각, 정상적인 인물로 채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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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때와 비슷한 경제 난국이다. 난국에 대한 해결책을 정치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소문으로 나돌던 최순실 씨의 불법 국정 개입이 사실로 드러났다. ‘최순실 사태’로 성난 민심은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수만 명이 촛불집회로 운집, 하야·탄핵을 외치고 있다. 일리가 없지 않다. 청와대가 아니라 ‘순실대’, 문체부가 아니라 ‘차은택부(部)’가 아닌가. ‘최 씨의, 최 씨에 의한, 최 씨를 위한 정권’이라 해도 할 말이 있을까.

박 대통령이 사면초가로 위기에 빠졌다. 이 지경이 과연 박 대통령 혼자 책임인가. 국가에 대한 감독견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도 방조한 사정기관 국회의원 언론 등은 과연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세상 물정을 몰라 무능할 수밖에 없는 온실화초 같은 분을 당의 대통령 후보로 뽑아 국민에게 찍어달라고 한 여당 의원들의 책임은 없는가.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이 춘추관에서 낭독한 대국민 사과를 면전에서 지켜봤다. 박 대통령의 표정에서 사과문은 진실이 아니라 빙산의 일각임을 알 수 있었다. 개에게 쫓기는 닭의 신세같이 초조해하고 있었기 때문. 프랑스대혁명 때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단두대에 오르면서 태연했다는데 왜 그토록 초조한가. 간신배에 둘러싸이고 바퀴벌레와 같은 모리배들에 이용당한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렸음일까.

박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하는 길이 나라를 위하는 길과 다른 길은 아니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의 의법처리는 당연하다. 문제는 수습책이다. 하야와 탄핵은 이 나라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책이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거국내각을 구성하면 해결되는가(여당이 방책으로 내놓은 ‘무늬’만 거국내각이 아닌 연립정권형의 진짜 거국내각을 말함). 한여름에 시원한 음료수 한 모금 마신 듯 청량함은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그 날 하루뿐일 것이다. 경제위기 등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이 기다린다. 대통령 5년 단임제하에서 연립정권은 비현실적이다.

정당성을 잃은 권력을 국민이 믿을까.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가. 사가(私家) 모리배들의 서투른 안이 청와대로 와서 국사(國事)로 결정된 것은 제6공화국 헌정체제인 민주적 대통령제를 이탈한 것이다.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던 대통령비서실과 내각을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바꿔야 한다. 그런 인물을 초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지금 박 대통령의 수첩에서 도덕성과 능력이 검증된 인사를 찾을 수 있겠는가는 의문이지만. 아예 오작동으로 나라를 파국으로 만든 청와대를 축소하는 것도 한 방법. 수석비서관제를 해체해 일부 비서관만 남겨두고 파견 나온 일반비서관과 행정관은 책임총리 보좌진으로 이동하던지 원래 부처로 복귀하는 것.

박 대통령은 여당을 탈당하고 차기 대권 창출에서 손을 떼야 한다. 박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서는 것은 국민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다. 대통령의 명령이 먹혀들지 않아 행정부를 이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게 돼 있는 현행 헌법 취지대로 여야가 동의하는 책임 총리가 외교 국방 통일 장관을 제외한 중립내각을 구성해 내정(內政)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들 사이에서는 여야정당 수뇌부를 고루 거친 김종인, 이부영, 손학규 씨 등을 책임총리로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조치 뒤에 여야는 무당쟁(無黨爭)선언을 하고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경제위기해법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외환위기와 87년 6월항쟁과 같은 정국 혼란 속에 국민은 또 다른 고통과 직면할지도 모른다. 결단은 박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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