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관 재정립 가능한 중대한 이론

삼한(三韓)이란 개념은 우리민족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개창한 왕건 태조에게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남긴 글의 제목이, 후일 삼한을 통일할 주인에게 드린다는 것이었다. 도선이 이 글을 왕건의 부친인 왕융에게 줄 당시에는 신라의 지방호족들이 발호하고 도적이 여러 군데서 일어났을 뿐, 아직 후삼국이 시작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런데도 삼한일통(三韓一統)이란 말을 썼다. 그러니까, 이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말을 삼한을 하나로 한다고 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한민족의 나라가 바로 삼한이다. 『삼국유사』에도, “왕은 유신과 더불어 꾀와 힘을 다하여 삼한을 통일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웠으므로 묘호를 태종이라고 했다”고 서술한다. 삼국이라 한지 않고 삼한이라 한 것이다. 고려 이전 나라이름에 삼한은 없다. 신라, 발해, 백제, 고구려 또는 가야가 있었다. 그런데 삼국시대 이전에 마한,진한,변한의 삼한(三韓)이 있었다. 그러면 이 삼한이 우리나라를 통칭하는 용어가 되었다고 하겠는데, 과연 이 삼한이 우리의 뿌리국가인가? 임금도 없어 옳은 국가라고도 할 수 없고 건립연대와 존립기간이 극히 불투명한 이 삼한이 과연 우리민족의 가슴 뿌리깊이 남아, 우리의 나라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삼한이라는 호칭이 나올 만큼 친근한 이름일까?

삼한이 지금의 한반도 남쪽에 존재하였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겠으나, 그 존립연도가 애매하고 작은 나라들의 지역적 호칭이지, 실제적인 국가가 되지 못하였다. 즉,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해서 모두 78국이나 되었다하는데, 각국에 속한 사람은 자기들의 나라이름을 과연 무엇이라 불렀을까? 예를 들어 진한 땅에 사로국과 소문국, 감문국과 사벌국, 골벌국 등이 있었는데, 사로국 사람이나 소문국 사람이 스스로를 사로국이나 소문국으로 부르지, 나는 진한 사람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사로국이 여러 소국들을 전쟁을 통해 병합하였는데, 과연 진한이라는 연맹체가 존재 하였을까도 의문이다. 그러므로 진한은 나라이름이 아니며 당대의 사람들에게도 소중한 자기정체성을 지닌 말이라 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삼한의 백성이라 하였을까? 필자의 생각에는 삼한시대보다 훨씬 먼 어느 시대, 그것도 긴긴 세월동안 삼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었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서 삼한은 우리의 뇌리에 깊이 박히어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삼한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삼한에는 고구려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라인들은 삼국통일을 당연히 삼한통일이라고 표현했다.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에는 이 삼한관경제도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의 김위제의 상소문에도 고조선의 삼경(三京)을 의미하는 『신지비사』를 인용하고 있다. 고조선의 삼한은 진한,번한,마한인데, 진한은 대단군이 다스렸고 번한과 마한은 각기 부단군이 다스렸다한다. 삼한은 나중에 삼조선이 되었는데,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어 세 나라가 거의 자립했다. 그러다 중국쪽에 있던 번조선이 위만에게 탈취되고 다시 한나라에게 빼앗기어 한사군이 설치되었다한다.

이 고조선 삼한설은 우리나라의 역사관을 다시 정립할 수 있는 중대한 이론이므로 그야말로 학계의 깊은 연구와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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