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조씨, 제3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산모룽이 사이로 다도해 바다가 보였다. 어느새 버스가 읍내의 터미널에 들어서고 있었다. 비릿하고 짭싸름한 바다 내음이 생경스럽게 후각에 묻어났다. 은어 비늘 같은 햇살이 읍내 택시 회사 간이사무실로 쓰이는 낡은 컨테이너 박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얼음 제조창 담벼락을 따라 가난의 더께처럼 다닥다닥 플라스틱 함지를 끼고 앉은 아낙들의 모습도 예전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낯선 것도 많았다. 관광객이 늘어난 탓인지 여관과 횟집, 노래방, 다방 등이 전에 없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이곳에도 어촌 특유의 풍광보다 도회지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상흔이 밀려들고 있었다.

갈매기 다방이라는 알루미늄 간판을 내건 이층 다방에서 꽤 비싸보이는 낚시 도구를 든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방파제로 걸어가는 것을 보니 낚시를 할 모양이었다. ‘강산 선구점’이라는 간판을 보는 순간 발걸음이 잠시 주춤거렸다. 바닷바람을 견디지 못한 목재간판이 곧 삭아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선구점 앞을 지나기 전에 나는 반쯤 열린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양복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노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박 선주가 틀림없었다. 서리가 내린 듯한 흰머리와 모양새를 보아하니 영락없는 시골 노인네였다. 박 선주가 나를 알아보기 전에 서둘러서 좌측으로 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너 갑수 아냐. 얌마,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던 갑자기 웬일이고?”

서너 개 낮게 잇대은 술집 처마 밑을 지나가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자 뜻밖에도 똥포 김봉달이었다. 워낙 모든 말을 그럴싸하게 부풀려서 한다고 똥포라는 별명을 가진 김봉달은 사십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머리가 벗겨져 이제 제법 늙숙해 보였다. 대낮부터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나오는지 얼굴이 삶은 게 껍질처럼 붉었다.

“으응, 휴가다. 바람도 쐴 겸해서 내려왔지 뭐. 근데 너는 웬일이고? 식당은 어떡하고?”

나보다 먼저 뱃생활을 청산한 똥포는 도회지로 나가 여러 일에 손을 댔으나 매번 실패를 거듭했다. 똥포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도회지 어딘가에서 숯불갈비집을 개업한다고 해서 찾아갔을 때였다.

“있는 재산 다 까먹고 짐 싸들고 내려왔지 뭐. 씨펄, 이번에 고향에서마저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다. 방금 속이 출출해서 해장술 한 잔 했다. 너도 한 잔 할래?”

나는 비로소 지난 기억의 한가닥과 마주친 기분이었다. 이곳 포구에서는 낮술이 보통이었다.

똥포가 나를 데려간 곳은 포구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해안통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낚시점이었다. 유리문에는 낚시도구 판매와 낚싯대 대여라고 적혀 있었다. 가게는 똥포의 아내가 맡아보고 있었다.

“이제야 네 적성에 맞는 일을 택한 거 같은데. 그래, 장사는 좀 되나?”

나의 말에 인조가죽 소파에 앉아 낚시줄을 매만지던 손님이 흘끔거리며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말도 마라. 이 장사도 우습게 봤다가 완전 죽을 맛이다. 가뜩 불경기인데다 이번에 망할 놈의 적조까지 겹쳤다는 거 아니가. 여기뿐만 아니라 이 근해는 너나없이 완전히 죽 쑤는 판이지. 니미, 그건 그렇고 넌 몇 년 트럭 몰았으면 이제 집 한 채 장만할 돈을 모았겠구나.”

트럭, 그랬다, 뱃생활을 청산하고 트럭을 몰면 육지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사시사철 풍랑과 비린내가 가시잖는 그 지겨운 바다를 떠날 줄 알았다. 하지만 육지 생활도 그리 만만치만 않았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고된 작업과 허름한 합숙소, 걸핏하면 차 임대료를 올리는 차주, 과적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수시로 돈을 요구한 단속원들, 어디고 부패된 생선처럼 냄새를 풍기지 않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꼬박꼬박 부어가던 적금 때문이었다. 삼 년만 채우면 작은 가게 하나는 열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이 그 적금통장 갈피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란 얼마나 가볍고 취약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순간에도 견디지 못하는 여리고 무력한 존재였다.

사고가 난 날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른 새벽에 작업장으로 트럭을 몰고 나가야 했다. 밤늦게 잔업을 하느라 두어 시간 눈을 붙인 게 고작이었다, 달리는 차창에 환각처럼 우우 몰려드는 안개. 때 이른 시각에 도로가의 가로등만 간신히 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횡단보도 네거리에서 신호를 받았 때였다. 커브를 돌아나가는 모퉁이에서 검은 물체가 뛰어나왔다. 핸들에 전해오는 낮고 둔탁한 충격, 길을 걷다가 홍시를 밟아 터트린 듯한 매우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처음엔 그저 고양이나 개인가 싶었다. 그러나 백미러에 드러난 그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검은 잠바를 입은 노인. 나의 희망을 물고 속절없이 저승으로 가버린 사람.

가게 위 벽에는 고기를 탁본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오십 센티는 될 듯한 감성돔이었다. 금방 살아날 듯한 어탁 액자 밑에 다섯 명의 서명이름이 붓글씨로 조잡하게 적혀 있는데 모두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재혼은?”

손님이 나가자마자 똥포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해야지. 좋은 여자 있으면 소개나 해줘.”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재혼 얘기만 나오면 하는 상투적인 대답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포구 한 귀퉁이와 정박 중인 소형 동력선들이 손에 잡힐 듯 내다 보였다.

“니미, 너한테 소개할 여자 있으면 내가 하겠다.”

똥포는 슬쩍 아내가 있는 가겟방 쪽으로 시선을 던지면 능글맞게 말했다.

“녀석, 아직 그 여자 못잊고 있지? 아니라고 부정해도 네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름이 뭐였더라. 해, 해인이 맞지? 벌써 몇 년이고? 네 결혼식 이후로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돌고래 식당의 사천댁 말처럼 그 여자는 사람이 아니고 바다에서 온 여자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죽었거나. 말이 나온 김에, 네 전처인 미희, 돈 많은 영감 물어서 신시가지 쪽에서 단란주점을 시작했더라. 박 선주가 병중에 중풍으로 쓰러지고 그 많던 재산 사기꾼에게 다 넘어갔지. 참, 사천댁이 올 봄에 도시에 나가더니 웬 여자 아이를 데리고 왔더라. 아이가 너무 어려 자식은 아닐테고, 젊었을 때 그 숱한 남자 다 뿌리치고 혼자 살더니 나이가 드니 적적했나?”

똥포는 그동안의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사천댁은 그 자리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의 소식은 듣고 있냐?”

나는 말머리를 돌리기 위해 어탁본에 적힌 이름 하나를 입에 올렸다.

“응. 두 달 전인가, 잠깐 왔을 때 문어 배를 타고 같이 낚시하러 나갔었다, 원양어선 타는 모양이더라. 결혼했는데 벌써 애가 둘이다.”

“문어가 배를 가지고 있어?”

나는 바람둥이 최가 결국은 결혼을 했다는 소식보다 문어 소식이 더 궁금했다. 문어는 동백호 시절 막내둥이었다. 이름이 강문호라 부르다 보니 자연 문어라는 별명이 붙은 녀석이었다. 그렇게 소원하던 배를 그예 장만한 모양이었다. 문호는 다른 사람이 모두 바다를 떠나도 자기만은 혼자서라도 고향 바다에 남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때 함께 동백호를 탔던 장 선장, 최, 김, 서 등 모두 뿔뿔이 흩어져 지금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친구들은 술만 들어가면 입버릇처럼 마지막까지 바다를 지킬 사람은 바로 그라고 떠벌렸다. 그 당시 나는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련없이 고향을 떠나기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어야 끝까지 뱃놈 소리를 들을 친구지. 자네가 그렇게 도망가듯이 고향을 떠날 줄은 아무도 몰랐지. 문어 그 친구 요즘엔 돈도 안되는 일에 혼자 열을 내며 뛰어다닌다. 어제도 적조 때문에 군청에 들어갔다가 가게에 잠깐 왔는데 자네처럼 얼굴이 말이 아니더군. 마음고생이 많을 거야. 그 놈들이야 돈이나 싸들고 가야 좋아하지. 어디 어민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어? 요 며칠 동안 그 일에만 쫓아다니느라 포구에 정박해 놓은 배가 녹이 슬었을 거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않게 이곳으로 내려올 생각을 한 것은 유해성 적조가 남해지역에 광범위하게 발생하여 조류를 따라 동해안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뉴스를 보고 난 후 였다. 나의 발길은 자신도 모르게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고 무작정 고향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는 불현 듯 문호를 만나고 싶었다. 동백호 시절에도 가장 마음이 맞았던 사이였다. 나이가 두 살이나 어렸지만 생각이 깊었고 나를 형처럼 따랐다.

“문어 녀석, 내일 박 선주 동생하고 바다에 황토 뿌리러 나간다더라. 조합에서 나온 사람들이 오늘 선구점에 들렀는데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야. 참, 그리고 장 선장 엄마 생각나? 읍내에 ‘청해’라는 술집을 했던 여자. 작년, 사고로 죽기 전에 장 선장 앞으로 보험도 몇 개나 들어 둔 모양이야. 그 정도 부모 복은 타고나야 하는데. 장 선장은 노름 빚 때문에 배 팔고 부인까지 도망갔지만 이번에 처녀장가까지 갔어. 터미널 옆에 새로 지은 사층 건물 봤지? 지하는 노래방이고 일층은 횟집인 건물. 그게 장 선장 꺼야.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장 선장이 한번 오라고 성화인데 오늘 다른 일 없으면 거기 모여서 한 잔 하자.”

마침 낚시꾼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곱 시 경에 장 선장 횟집으로 와라. 손바닥만 한 동네 가봐야 뻔하잖아. 다른 녀석은 내가 연락할게. 고향을 영 떠난 줄 알았던 네가 온 걸 알면 다들 모일 거다. 그리고 우리 집이 민박도 하니 여관에서 잘 생각은 말아라, 애 엄마한테 방 하나 청소하라고 해 두었으니까.”

해변에 널린 그물들이 모진 비린내를 날렸다. 나는 포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먼 바다를 달려온 바람이 바지가랑이에 휘감겼다. 언제나처럼 수산물 직판장 앞에는 해산물을 파는 아낙들로 걸음을 떼어놓기 어렵게 붐볐다. 빨간 고무 함지에는 우럭, 낙지, 오징어 등의 해산물이 바다를 그리워하며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수산물 직판장이 끝나는 지점에 돌고래 식당이 있었다. 거친 바닷바람에 페인트가 삭고 녹물이 배어 나온 함석 간판은 이제 상호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칠이 벗겨져 있었다. 그것이 왠지 안도감을 주었다.

“이곳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처럼 떠나더니 웬일이냐, 그렇게 멀뚱하게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와. 도시로 나갔으니 좀 변했으려니 했더만 아직도 촌티를 못 벗었네.”

사천댁은 몇 년 만에 불쑥 나타난 나를 보고도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외려 당연히 올 곳을 왔다는 태도였다. 가게 안은 예전과 달리 썰렁했고, 괄괄하던 사천댁은 어딘가 늙고 지쳐 보였다. 그때 방에서 대여섯 살 남짓한 소녀가 나왔다. 나는 긴 생머리의 소녀를 보자마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득 한 여자의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억을 지워버리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의 찌푸린 얼굴을 본 소녀가 얼른 사천댁 치맛자락 뒤로 몸을 숨겼다. 똥포 김이 말하던 소녀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소녀는 방안에만 갇혀 햇빛도 못보고 자란 식물처럼 창백해 보였다.

“방에서 왜 나왔어. 어서 들어가.”

사천댁은 보기에도 이상할 만큼 당황해하며 얼른 소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 큰 애가 워낙 낯을 가려서.”

방에서 나온 사천댁은 파래무침과 젓갈, 깍두기 등 밑반찬과 함께 소주를 내왔다.

“아직 해도 안 저물었는데 술 마셔도 괜찮아요?”

“그럼, 오랜만에 옛 단골이 왔는데 그냥 있을 수 있어. 한 잔 해야지.”

“그런데 온 동네 왜 이리 조용해요?”

나는 성마르게 숟가락으로 소주병을 따서 사천댁 앞에 놓인 잔에 술을 채웠다. 사천댁이 술병을 받아 나의 잔에 술을 따랐다.

“조황이 좋아야 찾아오든 말든 하지. 적조 때문에 더 하지.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요즘 뱃놈들은 이런 낡은 술집을 좋아하지 않잖아.”

풍랑과 고된 작업에 시달리던 뱃사람들은 육지에 내리면 약속이나 한 듯 돌고래 식당으로 또는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 몰려들어 독한 소주로 바다에서 가져온 긴장과 피로를 풀어냈다. 젊은 치들은 새로 들어온 깔치가 있는 식당으로 가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면 다시 바다가 그리워지는 거였다.

“요즘 사람만 변한 게 아니라 바다도 변했어. 이제 바다도 옛날처럼 사람에게 은덕을 베풀지 않아. 그게 모두 인간들 욕심 때문이제. 그나저나 하고 다니는 행색을 봐서는 아직 혼자인 거 같은데 숨겨놓은 여자 없어?”

힐난조의 물음에 나는 잠자코 술잔에 가득 찬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사천댁의 걱정이 그저 해보는 소리가 아니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박 선주 딸년은 애초에 집안에 들어앉아 살림할 여자가 아니란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지금 생각해도 벙어리년 만한 여자도 없었어. 걔가 네 연분인데 그걸......”

또 그 얘기였다. 사천댁은 아직도 여자가 종적을 감춘 것을 나의 잘못으로 여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머리를 스쳤다. 별안간 명치끝이 무지근해졌다.

내가 그 여자를 처음 발견한 것은 포구를 떠난 배가 두 시간 넘게 바다로 나갔을 무렵이었다. 그물 투하를 위해 고물로 갔을 때 잘 사려둔 뭇줄과 그물더미 사이에서 한 여자가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첫 눈에 거처 없는 떠돌이 여자로 보였다. 대체 언제 배에 올라탔을까. 어제 출어를 앞두고 오후 4시 경에 장비 점검을 할 때도 없었으니까 아마 밤늦게 배에 올랐던 모양이었다.

여자는 낡은 감빛 스웨터에 검은 통치마를 입고 있었다. 말려 올라간 치마 사이로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하얀 허벅지가 드러나 보였다. 나는 사람들이 오기 전에 말려 올라간 여자의 치맛자락을 내려 주었다. 나의 손길에 놀랐는지 여자가 눈을 떴다. 강한 햇살 때문이었을까. 나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눈동자는 때에 절은 꾀죄죄한 형색과 달리 너무 맑고 투명했다. 그 순간 나는 멀미를 하듯 속이 울렁거렸다. 짐작컨대 대도시의 삶에서 실패해서 섬 마을인 고향으로 돌아가려다 배를 잘못 탄 것 같았다. 아니면 지친 한 몸 쉴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배를 발견하고는 뱃전에 잠깐 쉬기 위해 몸을 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의 눈에는 얼떨결에 바다로 떠밀려온 그런 묘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여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배를 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며 화가 치민 장 선장이 주먹을 쥐고 을러댔다. 여자는 비명 같기도 하고 하소연 같기도 한 소리를 두서없이 내질렀다. 뜻밖에도 여자는 벙어리였다. 포구로 돌아가지 전까지 벙어리 여자는 성가신 존재였다. 여자가 배에 타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과 달리 전에 없는 만선으로 포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벙어리 여자 처리에 머리를 싸매야 했다. 배 안에서 몇 번 밥을 챙겨주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보호막 역할을 해 준 것이 화근이었다. 그 뒤로 이상하게 여자는 나를 따랐고 나의 말만 들었다. 나 역시 벙어리 여자가 그리 밉거나 거추장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동료들이 노총각을 위해 용왕신이 색시 하나 내려준 거라며 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이미 박 선주의 딸 미희를 결혼상대로 정해둔 상태였다. 박 선주의 생일날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여자를 데리고 한 달 계약제로 밥을 대놓고 먹는 돌고래 식당으로 갔다.

“적적하던 차에 잘 됐어.”

젊은 시절 운 나쁘게 남편과 아들을 모두 바다에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사천댁을 뜻밖에 별다른 소리없이 벙어리 여자를 받아 주었다. 사천댁은 나의 저녁상을 차려 준 다음 벙어리 여자를 욕탕이 있는 안채로 데려갔다.

“씻겨놓으니까 인물이 훤하다.”

식사를 마쳤을 때쯤 사천댁이 등 뒤로 숨는 벙어리 여자를 억지로 앞으로 내세웠다. 여자는 몰라볼 만큼 변해 있었다. 등줄기까지 내려오는 치렁한 젖은 머리와 사천댁이 준 옷 사이로 내보이는 유백색 피부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여자가 백치 같은 웃음을 보였다. 여자의 눈은 처음 봤을 때처럼 바다 속처럼 맑고 투명했다. 사천댁은 이렇게 예쁜 양딸을 줘서 고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천댁은 이름을 물어도 모른다고 고개만 흔드니 여자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을 했지만 사천댁이 자꾸 조르는 바람에 나는 바다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벙어리 여자의 이름을 ‘해인’이라고 지어 주었다. 그후 해인은 돌고개 식당에 맡겨졌다. 해인이가 식당에 있고 난 후 부쩍 손님이 늘었다며 사천댁은 기꺼워했다.

“혹시 해인이 소식은 들었어요? 그래도 아줌마하고는 친했잖아요?”

나는 어둠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와 푸른 몸을 뒤척이는 바다를 응시하며 물었다. 그러나 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한 번 떠나면 그만이여. 이 진절머리나는 바다가 뭐가 좋아서 다시 돌아오겠어. 누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사천댁의 얼굴은 술이 올라 발그스름했다. 사천댁은 무슨 말을 할 듯 머뭇거리다가 소녀가 들어간 방을 자꾸 힐끔거렸다. 사천댁이 무언인가 숨기고 있는 것을 눈치 챘지만 감히 그것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고래 식당에서 나왔을 때 해안을 따라 낙조가 내리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불현 듯 문호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수산물 직판장을 거슬러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방파제를 걸었다. 곳곳에 쓰다버린 폐그물과 헌 타이어가 널브러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무더기로 내다버린 굴 껍질들이 허옇게 패총을 이루었다. 나는 중간쯤에서 바다를 향해 오줌을 갈겼다. 오줌 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기름띠가 퍼져있는 바다로 떨어졌다. 바다는 예전보다 눈에 띄게 더럽고 오염되어 있었다.

문호는 선박 기관실에서 엔진을 손보던 중이었다.

“야, 문어야.”

별명을 부르자 얼굴만 내고 둘러보던 녀석이 나를 보자 반색을 지으며 갑판으로 올라왔다. 위통을 벗어젖힌 문호의 가슴팍에는 땀방울이 흘렀고 손과 팔뚝에는 기름때가 거멓게 묻어 있었다.

“형, 오랜만이야. 조금 전에 연락 받았어. 저녁 일곱 시라면서 시간도 다 되었는데 이리로 오면 어떡해. 형은 도시에 나가 살면서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네. 저번에 내려온 최성달 형은 완전히 이곳 사람이 아니고 도시사람 다되었던데. 그동안 형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안 봐도 훤하네. 그러지말고 이참에 고향에 내려와 나하고 배나 타. 그게 형한테 가장 어울리는 일이야. 요즘은 동백호 시절이 그리워......”

“글쎄......”

나는 문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과거를 회상하자 쓴 웃음을 베어 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소주와 오징어를 꺼냈다. 조금 전 돌고래 식당에서 챙겨온 거였다. 우리는 나란히 이물 쪽 뱃전에 엉덩이를 걸쳤다.

“휴가는 며칠이야?”

문호가 소주병을 잡으며 물었다.

“으응, 정해진 날짜는 없고, 좀 쉬다가 올라가면 돼.”

나는 차주와 대판 싸우고 난 후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온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김에게 휴가라고 둘러댔던 일이 떠올랐다.

바다는 더할 나위없이 잔잔했다. 멀리 보이는 바다 빛은 검붉고 음침했다.

“태풍이라도 불어야 적조가 물러갈텐데 큰일이야. 이번 적조 때문에 고기 씨가 마를 지경이야. 근처 가두리 양식장도 다 망했어.”

문호는 병째 나발 불던 소주병을 돌려주며 화제를 바꾸었다. 문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나는 찢은 오징어를 내밀었다.

“너 참, 그동안 혹시 해인이 본 적 있어?”

나는 술 힘을 빌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문호라면 이런 말을 물어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문호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며 나를 바라다보았다. 그 눈에는 약간의 연민의 빛이 떠도는 것 같기도 했다.

“형은 아직도 그 여자를 못 잊고 있구나. 만일 돌아온다면 받아줄 거야?”

갑자기 문호의 말투가 진지해졌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해서.”

나는 바다로 눈길을 돌리며 얼버무렸다.

해인을 돌고래 식당에 맡긴 후 나는 가끔 해인을 데리고 해안가를 산책하곤 했었다. 해인은 유별나게 바다를 좋아했다. 해인에게 바다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해인은 바닷가 바위틈에 몸을 숨긴 바지락이나 고동을 주워와 보여주면 즐거워했다. 나중엔 그것도 심심해지면 마냥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런 해인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해 지는 걸 느끼곤 했다.

어느 날 출항에서 돌아왔을 때 선착장에서 나를 맞이한 사람은 약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미희가 아니라 해인이었다.

“말 못하는 여자 데리고 뭐하는 거예요?”

해안가에서 그물을 늘어놓고 잠시 해인과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언제 왔는지 미희가 옆에 서 있었다. 미희의 찌푸린 인상을 본 해인은 금방 풀이 죽었고 입가에 맴돌던 웃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다에서 돌아와서 며칠 만에 보는 미희의 얼굴은 그날따라 생경스러웠다. 미희는 햇살 때문인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장과 나갔다고 하더니 언제 돌아왔어?”

나는 해변가에 앉아 수평선을 보고 있는 해인에게 눈길을 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수협 공판장 아들인 이 사장이 미희와 같이 도시로 나갔다는 것을 안 것은 아침에 읍내 선구점에 들렀을 때였다. 미희하고 약혼하기 전부터 이 사장과 미희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소문이 떠돌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 사장은 유부남이었고, 부모님처럼 모시던 박 선주가 몇 년 전부터 나를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인지 박 선주는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미희의 장래까지 부탁했던 것이다.

“그 일 때문에 지금 내 얼굴을 안 쳐다보면서 말하는 거예요? 당신도 질투할 줄 아세요?”

미희는 재미있다는 듯이 경망스럽게 웃어댔다. 나는 미희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자신의 행위에 전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 미희의 행동에 부아가 치밀었다. 미희는 아는 사람 차를 얻어탄 게 무슨 잘못이냐는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당당했다. 나중 밝혀질 거짓말에도 미희는 추호도 개의치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나는 해인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은 미희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순간적인 충동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나는 박 선주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침나절에 잠깐 선주 집에 들렀을 때 저녁에 들러 소주나 한잔 하자던 선주의 말이 떠올랐으나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혼자 선술집을 찾아 나섰다.

급하게 마친 탓일까. 빈속에 소주가 들어가자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미희와 약혼까지 한 상태에서 지금에 와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하면 마을의 유지인 선주의 체면도 체면이지만 나도 더 이상 이곳에서 발을 붙이기 힘들 것이었다. 나는 고아나 다름없었다. 겨우 두 살 나던 해 박 선주의 배를 타고 나갔다가 태풍을 만나 실종된 아버지, 아버지만 믿고 도회지에서 시집온 어머니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 뒤에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나를 아들처럼 키워준 박 선주를 배신할 수 없었다.

세 병째 소주를 따고 있는데 누군가 병을 빼앗았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자 햇살에 발갛게 익은 해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해인의 눈은 충혈이 되어 있었다. 나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녔는지 반가운 얼굴에 숨결이 가빠져 있었다.

“이리 줘.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어서!”

해인은 소주병을 등 뒤로 감추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마시라는 뜻이었다. 나는 병을 빼앗기 위해 일어났다. 그 순간 술집 안이 뱃전처럼 출렁거렸다. 해인이 얼른 다가와 나의 몸을 부축했다. 나는 술기운에 중심을 잃고 해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갑자기 해인의 몸에서 짭짤한 갯냄새가 났다. 나는 바다에 온몸을 맡긴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해인을 여관으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냄새 때문이었을까.

여관에서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될 수 있는 한 해인을 피해 다녔다. 결혼식이 멀지 않았고 식사도 선주 집에서 해결했기 때문에 돌고래 식당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니 그 모든 것은 변명이었다. 해인과 마주칠까 두려운 마음이 더 컸었다. 매일 해변가를 거닐던 해인이 독감에 걸렸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나는 선뜻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와 해인, 이 사장과 미희에 관한 무성한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결혼식은 아무 탈 없이 준비되어 갔다. 미희는 도회지로 나가 부지런히 전자제품과 가구들을 사다 날랐다. 결혼은 내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현실이었다. 게다가 미희는 읍내에서 제일 예쁜 여자였고, 재력을 가진 선주의 딸이었다. 나는 결혼식 준비 때문에 해인을 까맣게 잊어갔다. 돌고래 식당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혼식은 읍내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성대했다. 예상보다 박 선주의 명망이 대단했던지 도청과 수협에서까지 하객들이 몰려들었다. 그날 해인은 하객들 제일 뒤편에 서서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먼발치에서 본 해인은 병을 앓은 사람처럼 야위어 있었다. 슬픈 눈길이었고 통통하던 볼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핼쓱해 보였다. 그게 해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장 선장 횟집으로 갔을 때 이미 알 만한 친구들은 모두 바다가 내다보이는 큰 방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미 술들이 불콰하게 오른 얼굴이었다. 그들은 나를 만나는 게 반가운 게 아니라 나로 인해 이런 술자리가 만들어진 게 흥겨운 것 같았다. 은근히 기대하고 기다렸던 문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와라. 이게 얼마만이냐, 똥포를 통해 너에 대한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 대하니 영 다른 기분이다. 그런데 서울 살면서 이곳 사람보다 얼굴이 더 못하노.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그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장 선장이 제 딴에는 농담을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웃지를 않았다. 나는 장 선장이 무안해 할까봐 혼자 헛웃음 소리를 내었다. 머리에 무스를 발라 잘 빗어 넘긴 외모 때문에 처음에는 장 선장을 못 알아볼 뻔했다.

“야, 고향이 뭐 도시생활에 싫증나면 내려오는 피난처인 줄 아냐.”

그때 방 구석에서 누군가 비냥거렸다. 말투가 사나운 걸 보니 분명 임중식이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제일 문제아로 몇 번 무기정학까지 받았던 임은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선생이 되어 있었다.

언제나 술자리는 신상잡담으로 시작되어 터무니없는 호기와 과장된 신세 한탄, 그리고 성에 관한 걸쭉한 음담패설로 이어졌다. 그 얘기 끝에 누군가 미희와 이 사장에 관한 얘기를 입에 담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갑수 쟤만 모르고 있어찌. 미희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상과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걸 말이야. 왜 내연의 관계란 것 있잖아. 나쁜 건 외려 박 선주야.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결혼을 하면 마음을 잡을까 싶어서 억지로 떠민 거지.”

아버지 덕에 먹고 사는 난봉꾼 이 사장과 미희가 서로 만나는 사이라는 걸 소문으로 웬만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믿었다. 젊었을 땐 누구나 한 번씩 방황은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건 어쩌면 미희의 미모나 박 선주의 재력에 끌린 얄팍한 욕심에 의한 야합이었는지도 몰랐다.

결혼 후에도 미희의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걸핏하면 외출이었고, 때 이르게 출항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집에 있은 적이 없었다. 출항하는 날이면 며칠 동안 집에 오지 않는다고 아내에게 신경쓰라고 은근히 일러준 사람은 사천댁이었다.

‘어떻게 집에서 남자만 기다리고 있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판에. 그건 시간 낭비야.’

나의 질책에 미희는 그런 식으로 대거리를 했다.

미희의 탈선을 확인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어민들의 불법 어로 문제와 공동 어장 관리선 허가 문제로 와병 중에 있는 박 선주를 대신해서 도청 수산과에 들어가야 했다. 수산과 직원들을 대접하려면 하루만에 다녀올 수 없었다. 그것을 잘 아는 미희는 나의 출장에 대해 아무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잘 해결되어 나는 새벽녘에 택시를 타고 포구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었을 때 미희는 혼자가 아니었다. 잘 먹어서인지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는 이 사장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방에 누워 있었다. 눈 앞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집에까지 정부를 끌어들이리라곤 미처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이상하게 화는 나지 않았다. 의외로 체중이 내려간 듯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미희의 과거를 모두 용서하고 새로 시작하려 했던 것이 얼마나 큰 욕심이었던가를 알았다. 이제 서로를 위해 끈을 놓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날 미희의 입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자신의 행위에 대해 거짓말이라도 늘어놓았다면, 아니 후회하는 일말의 감정을 보여 주었다면, 나에게 불륜 현장을 들킨 이 사장이 지례 겁을 먹고 도망가다가 사고를 당하고 난 후, 나에게 맞은 것처럼 꾸며대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어쩌면 죄를 짓고 도망가는 사람처럼 아무 해명도 없이 갑자기 고향을 떠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 얘긴 그만 둬.”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취기와 함께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 참을 수 없이 솟구쳤다. 나는 빈 병을 들어 벽에 내던졌다. 파열음을 내며 병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갑자기 식당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다.

누군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읍내에 새로 생긴 회관으로 가자고 제의를 한 후 우리는 숭어떼처럼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숙취로 인한 두통으로 눈을 떴을 때는 낯선 방안 가득 햇살이 밀물처럼 들어차 있었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옷이 허물처럼 윗목을 지키고 있었다. 어젯밤의 기억이 토막 난 필름처럼 머리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게 선술집이었다. 똥포 김봉달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 한동안 실갱이를 했던 기억......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버릇처럼 해안통을 돌아다니며 고함을 지르거나 토악질을 하고 모두들 제 갈 길로 가고 난 다음 혼자서 이 모텔에 찾아들었을 것이었다.

나는 대강 세수를 하고 모텔을 나왔다. 아침녘의 투명하고 강한 햇살이 읍내에서 바다 끝까지 찬연하게 쏟아졌다.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가 계속될 모양이었다.

나는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적조 구역에서 황토 살포 작업을 한다는 말은 어제 문호의 배에서 들었던 터였다. 문호가 돌고래 식당에서 본 소녀를 안고 몇 차례 빙빙 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동안 제자리에 서서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소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메이리처럼 바다로 퍼져 나갔다. 문호가 소녀를 내려놓고 방제선 쪽으로 걸어갔다. 문호가 배에 오를 때까지 소녀는 손을 흔들었다. 선착장으로 걸어가자 나를 본 소녀가 갑자기 혀를 쏙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소녀를 잡으려고 하자 소녀는 돌고래 식당 쪽으로 달아났다. 바람에 날리는 소녀의 긴 머리카락과 푸른 바다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때 한순간 나는 해인이 돌아온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이미 몇 대의 방제선이 작업에 나갈 인부들을 싣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번째 방제선 갑판에 서 있던 문호가 얼굴에 반가움을 담고 번쩍 손을 들고 흔들었다.

“어젠 왜 술자리에 안 나왔어?”

문호가 멋쩍게 씩 웃었다.

“엔진 고치느라 늦어졌어. 가봐야 술밖에 더 먹겠어. 오늘 일찍 나가야 해서. 형은 어제 봤으니까 됐지 뭐. 같이 갈 거지?”

나는 한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 넘기면 잠시 망설였다. 선착장으로 나온 것을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오늘 하루 어떡하겠다는 계획이 선 것은 아니었다. 그냥 버릇처럼 선착장에 나와 봤을 뿐이었다. 서울서 트럭을 운전하던 일이 아득한 옛일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훌쩍 몸을 날려 뱃전에 올랐다.

“형, 잘 결심했어. 형이 있어 준다면 많은 힘이 될 거야. 어린 해인이는 이제 형이 키워야지. 그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해인 씨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선착장에서 봐서 알겠지만 아이를 데리고 도시로 나가면 그 맑은 웃음을 잃어버릴 거야.”

문호의 생각지도 않은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문호는 소녀가 당연히 나의 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입만 벌리고 있는 나를 혼자 내버려둔 채 문호는 배의 이물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배 난간을 붙잡았다. 소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자꾸 귓전을 맴돌았다. 해인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지만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흐려졌다.

방제선 두 척이 먼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우리가 탄 배도 뒤를 따라 출발했다. 선착장이 눈에서 점차 멀어졌다.

햇살이 수면 위로 잘게 부서져 내리면서 눈망울을 찔렀다. 나는 비로소 자신이 다시 이곳을 찾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바다를 떠나 있던 몇 년 동안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품고 있던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해초처럼 치렁대는 머리채를 한 여자가 바다 물이랑 사이를 걸어오는 듯했다.

‘적조니 뭐니 해도 모든 건 인간들 욕심 때문이제.’

사천댁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가슴을 열고 크게 바닷바람을 들이마셨다. 언젠가 해인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앞서 간 하얀 방제선 한 척이 일으킨 하얀 포말이 마치 바다가 일으키는 흰돌고래의 꿈처럼 햇살에 부서졌다.



박경조씨= 대구출생
■ 당선 소 감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미지의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아무 생각없이 불쑥 떠나는 여행은 낯선 지역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두려움은 물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자신감 결여와 불안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마다 마치 미지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자신의 글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뒤따른다.

그런 자신감 결여 때문에 몇 년 동안 글을 손에서 놓고 지냈다. 일부러 책을 멀리하기도 하고, 또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내가 얼마나 글에 대한 욕구가 강한지 시험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을 담금질하면서 백수처럼 하루하루를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지냈으나 채무자처럼 쫓기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 주어진 이 상으로 인하여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글 쓰는 일이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처럼 힘들겠지만 이제 출발점에 서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 그런 신중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르쳐 준 경북일보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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