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고구려 계승해 대조영이 건국한 국가

발해 영토

일연선사는 낙랑, 대방에 이어 다음과 같이 발해(渤海)를 소개한다.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栗末靺鞨)이다. 그 추장 대조영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를 진단(震旦)이라 하였다. 당 현종(唐玄宗) 시대인 712년에 말갈의 칭호를 버리고 오직 발해라고 칭하기 시작하였다. 개원(開元)7년(719년), 대조영이 죽으니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하였고 세자가 세습하여 왕위에 오르니 당 현종이 왕위 계승의 책문(冊文)인 전책(典冊)을 내려 왕위를 세습하게 하였으나, 사사로이 연호를 고쳐 마침내 해동성국(海東盛國)이 되었다. 그 땅에는 5경(五京)·15부(十五府)·62주(六十二州)가 있었다. 후당(後唐) 천성(天成) 초년(926)에 거란(契丹)이 이를 깨뜨렸다. 《삼국기》에 이르기를, 의봉(儀鳳) 3년 고종(高宗) 무인(戊寅)년(678)에 고구려의 남은 자손이 한데 모여 북쪽으로 태백산 아래 발해를 세웠다. 개원(開元) 20년(732)에 당 현종은 장수를 보내어 이를 쳤다. 또한 성덕왕(聖德王) 33년(734년) 현종(玄宗) 갑술(甲戌)년에 발해말갈이 바다를 건너 당나라 등주(登州)를 침범하니, 현종이 이를 토벌하였다고 하였다. 또 《신라고기(新羅古記)》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옛 장수 조영의 성은 대씨(大氏)인데, 패잔병을 모아 태백산 남쪽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발해라 하였다. 이 글들에 의하면 발해는 곧 말갈의 별종(別種)이다.

한국사학계는 대체로 발해(698년~926년)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대조영이 건국한 국가로 본다. 발해의 건국으로 남쪽은 신라, 북쪽은 발해가 병립하는 남북국 시대가 열린다. 발해는 228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 및 연해주에 걸친 넓은 지역에 존속하였다. 발해는 초기에 진국(振國 또는 震國)이라 했는데, 고려라고 자칭하기도 했으며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기도 했다. 고구려가 멸망 후 30년 무렵인 698년,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고구려 유민과 속말말갈 세력을 기반으로 대조영이 동모산 부근에서 건국하였다 한다. 당(唐)이 영주(營州:위치 미정)에서 고구려, 말갈, 거란 등의 유민을 억류? 착취하던 중,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각각 고구려와 말갈의 유민들을 이끌고 탈출하였는데, 두 집단을 통합한 대조영이 천문령에서 당군(唐軍)을 크게 격파하고 세력을 키운 후 건국한 것이다. 대조영의 출신에 대하여, 《삼국사기》는 본래 고구려의 별종이라 하고(발해말갈 대조영자 본고려별종야/渤海靺鞨 大祚榮者 本高麗別種也) 신당서는 말갈의 별종이라 기록하였다(발해 본속말말갈부고려자 성대씨/渤海, 本粟靺鞨附高麗者, 姓大氏). 당의 역사를 기술한 사서는 두 가지가 있는데, 당 멸망 직후인 오대(五代)시절 후진(後晉)의 유후가 찬술한 《구당서(舊唐書)》와 이 내용이 충실치 못하다고 북송(北宋) 인종이 구양수 등을 시켜 재구성한 《신당서(新唐書)》가 있다. 일연은 여러 사서를 인용하면서 속말말갈부에 속해 있다가 고구려 장군이 된 대조영이 영주로 들어갔다가 고구려와 말갈의 유민들을 이끌고 영주에서 나와 태백산아래에서 발해를 건국하였다고 보았다.
 

트로이츠크 고분군에서 발견된 발해토기 (국립문화제연구소)

삼국유사의 태백산이 중국사서에서 전하는 동모산과 같은지는 연구과제이거니와, 한국 학계는 길림성 돈화로 보며, 윤여동은 적봉 부근, 일연은 만리장성 동북방면인 요서지방을 발해 중심부로 파악한다. 그런데 중국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 발해의 발상지는 발해 부근, 즉 요서지방일 것으로 판단된다. 발해는 전성기에 만주의 대부분과 연해주를 장악한 것으로 보이며 블라디보스톡에서도 발해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2007년 러시아의 아무르강 너머의 블라고베셴스크 주변에서 트로이츠코예 발해고분군이 발견되어 발해의 강역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넓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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