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 주상절리 푸른바다 위에 만개한 해국 꽃잎을 펼친 듯

양남 부채꼴 주상절리
진기하고 귀중한 것은 자꾸 보고 싶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도 그랬다. 첫출발을 하서항에서 나아 해변까지 스케치 하듯 훑고 지나니 아쉬움이 남았다. 첫눈에 반한 사람과 통성명만 하고 헤어진 기분이랄까. 서운한 마음에 다시 찾았다. 진면목을 보려면 좀 더 깊이 있는 만남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사이 하서항에도 봄이 만개했다. 마을 여기저기에 붉거나 노란 꽃들이 상큼한 바람을 일으켰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동네 카페 앞을 지난다. 달콤한 생크림 파르페와 진한 커피 향이 마음을 잡아당긴다. 불현듯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 상호가 동네 카페니 저곳에 가면 아는 얼굴 한 명쯤 앉아 있을 것 같다. 그 혹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 창 너머 푸른 바다와 기울어진 주상절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주상절리 앞에서 기념촬영하는 관광객
바람은 살갑고, 바다는 자신만만 위엄 있어 보였다. 그곳에 푸른빛이 장대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기울거나 누워있는 주상절리. 어느 예술가가 이리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을까. 자연이 창조한 삼라만상을 담는 카메라의 눈이 사뭇 진지하다. 자연이 빚어낸 풍광과 인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 어우러져 더 환상적인 길 위에, 온갖 종류의 향기가 떠다닌다. 향기에 끌려 바다에 온 아이들이 해파랑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누워 있는 주상절리를 지나 전망대 쪽으로 걸어갈 때는 바다만 보지 말고 왼편의 경사진 언덕도 살펴보자. 지반이 솟아오를 때 계단 모양의 해안 단구가 만들어지면서 드러난 속살이 보일 것이다. 파도에 쓸린 분출 화산암의 누운 기둥들이 보이면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볼 일이다. 한때 이 길이 파도가 철썩이던 해변이었다는 사실보다 역사는 어떤 형태로든 후세에 당시의 흔적에 대해 말해 주고 싶어 한다는 것에 더 놀랄 것이다.

파도소리길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 움직임이 미미해서 느끼지 못할 뿐 끊임없이 변화한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어딘가에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고 싶어 한다. 때때로 산을 오르다 보게 되는 돌탑을 이곳에서도 보았다. 해안가 커다란 바위와 그 위에 뿌리를 내린 노송.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관계지만 밀어내지 않고 서로의 몸을 잘 안아주고 있다. 공생(共生) 때문일까. 그곳에 누군가 쌓아 둔 돌탑이 있다. 얼마나 많은 마음이 얹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을까.

파도소리 편의점 앞은 북적북적하다. 엿도 팔고 군밤도 판다. 유년이 그립다면 추억의 옛날 과자를 사서 일행이랑 나눠 먹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눈앞에 거대한 조망타워가 보인다. 살짝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모노 커피집 앞, 천사의 날개가 있는 포토존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면 된다. 시내로 치면 이곳이 중심지다. 마실 곳도 쉴 곳도 볼 것도 많다.

막바지 공사가 진행중인 주상절리 조망대
곧 조망대가 완공되면 세계적으로도 희귀해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된 부채꼴 주상절리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게 된다. 그뿐 아니다. 산책로 전 구간에 경관 조명등이 설치되어 야간 시간에도 산책이 가능하다. 수백 개의 주상절리가 만개한 해국처럼 꽃잎을 펼치고 있는 장면이 동해 바다와 어우러진 모습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소임에 틀림없다.

조망대 주위엔 커피 집과 펜션이 밀집해 있고, 언덕 아래 담벼락에는 해바라기와 그리스 에게해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벽화가 있다. 그 앞에 서면 잠시 가던 길 멈추고 그림과 교감해 보길 바란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벽화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말을 걸어온다. 그런 다음 언덕 위로 올라가 커피숍 앞 그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입이 심심하다면 어(魚) 선생네를 기웃거려보면 어떨까. 즉석 수제 어묵과 크로켓 전문집인데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읍천항 갤러리 대상수상작
파도소리에 취해 다시 길 위에 선다. 새싹이 풍성한 물결을 이루는 들판엔 봄을 일구거나 뜯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고, 아이들은 호기심이 폴폴 묻어나는 얼굴로 출렁다리를 건넌다. 오늘 읍천항 주변엔 임시 장터가 열렸다. 마을 할머니 여러 분이 길가에 앉아 미역과 냉이, 쑥과 생선을 팔고 있다.

“사 가이소. 싸게 줍니더.”

고무 대야를 다리 사이에 끼고 앉아 오가는 손님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춘다.

파도소리길을 맨발로 걷는 관광객
남녀노소 즐길수 있는 파도소리길
공용화장실 앞은 야외 갤러리다. 고릴라와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 벽화 앞에 할아버지 두 분이 앉아 햇빛 바라기를 하고 있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동심 앞에서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벽화에서 따뜻함과 행복이 묻어난다. 대부분의 작품은 벽화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 5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의 제목은 ‘바다 이야기’다. 심해에서 거북이 등을 타고 있는 심청이 모습이다. 고무보트 위에서 단잠에 빠진 강아지도 왠지 벽화의 일부처럼 보인다.

기와집 칼국수
몽돌과 파도의 합주가 매력인 나아 해변. 이곳은 월성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관계로 해안도로가 없다. 마을길로 접어들어 나아 교차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봉길 터널을 통과하는 게 좋다. 해변 정자에서 왼편 골목길로 접어들면 전봇대에 해파랑길 표지가 붙어 있다. 작아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지만, 잠깐 길을 잃는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워보면 봉길 대왕암 파도 소리가 들려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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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진 소설가
■ 여행자를 위한 팁

△길과 음식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나아 해변은 해파랑길 중 가장 쉬운 코스라 할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해안길 따라 걸으면 된다. 쉬어갈 만한 장소도 먹을 것도 많다. 시작점인 하서항은 물론 읍천에도 횟집과 활어직판장이 있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중심으로 전망 좋은 커피집과 펜션이 밀집해 있다. 대부분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포인트
하서항에서 출발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기울어진 주상절리다. 파도소리길을 따라 누워 있는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부채꼴 주상절리 순이다. 이름을 알고 보면 의미가 달라진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선생의 시처럼.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수진 작가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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