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장터 활성화 핵심 인물 김이형 유공비 방치
표지판·진입로 없이 제산에 덩그러니…희귀 유물 보존 시급

김이형 유공비
포항시가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던 형산강 부조장터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부조장터 활성화의 핵심역할을 했던 보부상 ‘좌상대도접장김이형유공비’가 산기슭 절벽에 방치돼 표지판 설치와 진입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 되고 있다.

형산강 부조장(扶助場)은 ‘아랫부조장’(포항시 연일읍 중명리 강변)과 ‘윗부조장’(경주시 강동면 국당리 강변)으로 형성됐다.

부조장(扶助場)은 경주 강동면 국당1리의 형산강 하류에 있었던 전통시장이며 고려 중엽에서 1925년대까지 약 1천년을 존속하면서 조선 3대 시장으로까지 손꼽혔던 조선 최대의 시장이다. 시장이 점차 커지자 형산강 하류인 포항 연일면 중명1리에 다시 시장을 분설해 경주 강동은 윗 부조장이 되고 포항 연일은 아랫 부조장이 될 정도로 상거래가 호황을 이뤘다.

당시는 함경도 명태, 강원도 오징어, 포항 연안의 청어와 소금,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의 농산물을 교역하던 곳으로 당시 형산강 유역에는 수많은 황포돛배와 객점, 여관, 창고가 건립되고 또한 전국의 보부상(褓負商)들이 모여들어 위탁판매업과 숙박업이 번성했으며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교통 요지이기도 했다.

김이형 유공비
이 아랫부조장과 윗부조장의 경계지점인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 제산(弟山) 기슭 국도변 절벽 밑에 보부상 도접장 ‘좌상대도접장김이형유공비’(左商隊都接長金公以亨有功碑)가 쓸쓸히 방치돼 있다.

이 부조장터의 번성함을 기록해 주는 유적인 김이형 유공비는 포항시 연일읍에서 경주로 향하는 옛 국도 외팔교 마지막 지점 오른쪽에 있는 제산 기슭에 세워져 있다.

이 유공비는 아무런 표지가 없고 봄이나 여름에 가면 풀이 우거져 찾기가 어렵고 올라가는 길이 없는 데다 경사가 심해 위험하다.

좌상대 도접장 김이형 공의 유공비는 고종 원년(1864)에 세워졌다. 좌상대는 보부상 중 부상, 즉 등짐장수의 조직을 의미하며 도접장은 그 회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상의 회장이 경주 윗 부조장 출신이라는 것은 부조장이 조선에서 그만큼 번성한 상권을 형성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서 상인인 보부상의 유공비는 전국적으로도 희귀한 유물이어서 보존이 시급한 실정이다.

당시 현감들의 공적을 기리는 공덕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유물이지만 사농공상의 차별이 엄격하던 시절의 보부상 도접장의 유공비는 흔한 유적도 아니고 부조장터의 융성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유적이다.

포항시가 경주시와 지역 상생발상생발전모델인 ‘형산강젝트’ 선도사업의 하나인 ‘형산 신(新)부조장터 조성 및 뱃길 복원사업’ 신규 국·도비를 포함한 6억을 확보함에 따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따라서 경주시와 협력해 김이형 유공비 입구에 작은 표지판 하나 세워 형산강변 트레킹하는 사람들이나 유적 답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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