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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그 수많은 욕구를 현실에서는 다 충족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욕구는 무의식적 충동이고 현실은 그 욕구들에 대한 금지의 힘이라고 한다. 결국, 욕구와 금지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마음의 평화가 깨어지면서 불안이 생긴다. 불안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욕구 일부분이라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방법을 우리는 ‘자아의 방어기전’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방어기전들은 여러 종류가 있으며 건강하고 성숙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병적이고 퇴행한 기전들도 있다. 나름대로 욕구 충족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들이 독특하고 개성적이고 남들과 다른데 이를 우리는 성격이라 부른다.

병적인 방어 기전중에 ‘투사’ 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 투사란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계획이나 충동을 남의 것이라고 떠넘겨 버리는 기전이다. 자신의 실패조차 ‘남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아주 병적인 기전이다.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주눅이 들고 눈을 쳐다보기 힘들고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던 사람이 어느 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하고 욕하고 감시한다’는 생각을 가져 버린다면, 이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생각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려 버리는 투사라는 방어기전을 사용한 것이다. 바로 이런 투사에 의해서 망상이 생기고 환각 현상이 생긴다고 정신의학에서는 설명한다. 의처증이나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배우자에 대한 의심, 피해망상 같은 걱정스러운 정신병리 현상에는 투사라는 병적인 기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속이거나 해롭게 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친구나 동료들도 못 믿고 자신의 정보가 자기에게 악의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생각하며 터놓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공감이 어렵고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 찬 성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승화’라고 하는 방어기전은 건강하고 성숙한 기전이다. 본능적 욕구나 참기 어려운 충동적인 에너지를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형태로 돌려서 사용하는 기전이다. 무의식적 충동 에너지를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방법으로 바꾸어 충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흙덩어리를 마구 주물러서 이곳저곳 처바르며 난장판을 치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을 변화시켜서 흙을 빚어 도자기를 굽는 행위로 승화시키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욕구를 승화시킨다면 흙으로 난장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고 멋진 조각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본능적인 성적인 욕망을 그대로 해결할 수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에서 열심히 축구를 하는 한 고등학생, 본능적인 욕망을 승화시켜 체육으로 해결하는 성숙한 방어기전을 사용하는 중이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수도 있는 건강하고 성숙한 기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 방어기전들이 미성숙하고 병적인 방어기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병적이고 퇴행한 성격을 나타내게 되고 건강하고 성숙한 방어기전들을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성숙하고 건강한 성격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방어 기전들은 자기 눈에는 잘 보이지 않고 남의 눈에는 잘 보인다. 마치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이 자기보다 남의 눈에 잘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방어기전들을 잘 살펴보고 성숙하고 건강한 방어기전들을 사용하려고 노력을 한다면 그는 이미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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