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포스텍 교수·유라시아 원이스트씨포럼 회장.
정진호 포스텍 교수·유라시아 원이스트씨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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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28일부터 4월 6일까지 경주에서 청년들이 기획 및 주관하는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전시회 이름을 ‘무제우편(無題郵信)’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제목이 없는 편지, 수신인 불명의 엽서, 갈 곳 잃은 사연들을 북한의 청년들에게 보내겠다는 것이다. 통일을 열망하고 소원하는 남쪽 청년들의 마음, 남쪽 청년들의 북쪽 청년들을 향한 우정의 손짓,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남북의 청년들이 드라마 속에서나 이루어질 것만 같은, 사랑의 불시착을 꿈꾸는 전시회가 될 것이라 한다. 뿐만 아니라 북에서 넘어온 분들의 아픈 사연들과 북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동영상까지 보여주며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높은 담벼락 위로 청년들의 희망을 실은 종이비행기를 날려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립하며 서로를 향해 온갖 험한 말을 쏟아내고 있는 이때에? 이런 일을 꿈꾸는 이 청년들은 대체 누구인가?

최근 남북 간의 대결·대립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남쪽 정부는 국방백서에 북한을 다시 주적이라 명기하고, 줄곧 선제타격 킬체인(Kill Chain) 한미일 군사훈련 강화를 통해 전쟁을 외치며 평화라는 단어를 지우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북한은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며 위협하더니, 최근 그들이 70년 이상 견지해 온 통일 지향적 정책을 포기해버리는 듯, 이제는 각자도생의 길을 가겠다며 통일이라는 단어를 지우기 시작했다. 정말 우리가 어려서 그토록 목 터져라 부르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은 역사 속에서 요원하게 멀어져 가고 말 것인가? 과연 그래도 되는 일인가?

남과 북을 이어 유라시아로 통하는 길을 내겠다는 우리 포럼의 꿈은 다가오는 미래 세대인 ‘통일 세대’를 위한 청사진이기도 하다. 남북이 협력하여 상생경제를 이룰 때 가져오게 될 엄청난 미래가치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치권과 기성세대들은 그것을 이념의 가림막으로 보지 못하게 가리우고, 정치적 잣대와 불신의 대립상황을 만들어 청년세대들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녀 세대들이 어찌하여 스스로를 N포세대라고 부르며 희망을 잃어버린 채,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며 자살과 자포자기로 꿈을 상실해 가는가? 그건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어떠한 청사진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의 시 ‘오감도’에 나오는 13인의 아이들처럼, 막다른 골목을 향해 그들을 무한 경쟁 속에 밀어 넣고 무작정 질주하게 만들었던 그 책임을 기성세대들은 어떻게 질 것인가?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통일비용보다 통일수익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비용은 유한비용이지만 분단 비용은 무한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럼 남북이 하나 되어 나아갈 때 기대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통일수익, 시너지 효과를 한번 상상해보자. 먼저 남북한 인구 1억에 육박하는 거대한 내수시장이 형성되어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으로 올라서고, 북극항로의 시발점으로 동해안 도시들이 참여함으로써 하나의 동해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초국경 경제의 바다이자 21세기의 지중해가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의 무한한 지하자원을 이용하는 북한 전역의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여 남쪽의 기술력과 북쪽의 숙련된 노동력이 만날 때, 비로소 새로운 경제도약의 기회가 열리고 남북한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60~70대들이 과거 70~80년대 한국에서 경험했던 새로운 경제개발과 산업화 시대로 재진입할 기회가 찾아온다는 뜻이다. 포항제철의 새로운 친환경제철법 HyREX공장이 북한의 청진에 세워지고 무산의 무진장 자철광을 이용하며,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끌어다가 남북한 철강공동체, 자원에너지 공동체를 이루는 그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것이다. 1979년 미·중수교 이후 30년 만에 중국이 세계 제2위의 강국으로 등극했다면, 만일 북미수교가 성공한다면 우리 민족은 남북한 경제협력 시대의 파도를 타고 더 빠른 속도로 세계 역사 속 강국으로 등장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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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 1월 23일, 북한 당국은 김대중-김정일 시대 6·15 공동 선언의 상징물로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나 다름없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의 철거식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북한 지하철 ‘통일역’에서 ‘통일’을 지워버리기까지 하였다. 대한민국과의 국가관계에 있어서도 민족의 개념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듯 대한민국이 주적임을 헌법에 명기하겠다고 지시했고, 대외적으로도 남조선이라는 호칭 대신에 대한민국 또는 한국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과연 잘된 일인가?

평양과기대 사역을 위해 평양에 있을 때 가족과 함께 늘 오가던 길목에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의 기도를 드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기념탑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가슴을 멍들게 한다. 막내딸이 기념탑 앞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보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 염원과 통일을 위한 그 기도가 대를 이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함께 갔던 아들은 평양과기대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지금도 서로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가 오가던 지하철 부흥역과 영광역 그리고 통일역을 떠올리며, 언제 다시 통일역이 부활하여 민족의 부흥과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인지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2018년 4·27 회담이 전 세계 매스컴을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타전되고 있을 때였다. 평양과기대를 졸업하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MBA과정으로 유학 중에 있던 두 제자가 TV 앞에 앉아 밤새워가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마침내 두 정상이 판문점 분단선에 서서 손을 마주 잡았던 그 순간, 서로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몇 달 후 그들을 찾아간 나에게 회고했다. 이제야말로 우리 민족이 통일이 되나보다 하고 감격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순간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오직 통일이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해왔던 북한 청년들의 그 두 눈에 비쳤던 감격처럼, 과연 남쪽의 청년들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생각하니 부끄럽고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통일의 꿈을 잃어버린 세대를 우리는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번 통일 전시회를 통해 남쪽의 청년 세대들에게 다시 한번 그 꿈이 작은 불꽃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그 꿈을 잃어버리게 만든 기성세대들을 향해서도 그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길 바란다. 통일의 꿈을 제발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우리도 통일된 나라에서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그리고 그들의 외침이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 북한에 있는 그들의 친구요 동무들에게도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절대로 이대로 우리가 통일의 꿈을 지우고 포기할 수는 없다고. 왜냐하면 그건 우리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우리 자녀 세대들이 살아갈 나라는 분열과 증오와 분노와 전쟁의 역사를 멈추고, 평화와 상생과 협력과 우정이 넘쳐흐르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번 ‘청청통: 무제우편’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길 바란다.
 

무제우편 포스터

◇ 무제우편 통일 전시회
일시: 2024년 3월 28일~4월 6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수요일 휴일)
장소: 경북 경주시 보불로 181 카페아래헌
후원: 

무제우편 통일 전시회 QR코드.
무제우편 통일 전시회 QR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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